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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유럽에서는 인간의 삶을 고찰하자는 실존주의 열풍이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될 정도로 번성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철학의 상아탑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려 했던 사르트르가 있었다. 노벨문학상을 거부할 정도로 철저한 권위의 타파를 주장했던 사르트르에 의해 실존주의는 전 세계를 열병처럼 휩쓸었던 것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지식인은 무슨 존재이며, 무슨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하는 강의 채록이다.


책을 다 읽고 같은 선상에서 사유를 시작하더라도 이렇게나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또는 기타 그의 저서들을 읽었을 때, 존재에 대한 내 생각이 놀랍도록 사르트르와 일치하는 것에 전율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많은 부분에서 내 견해와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나는 극한의 자유주이자이다. 개인은 실존 속에 기투되었으며, '자유롭도록 선고받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존중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단, 이와 동시에 남 역시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반면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적 공산주의자이다. 그는 '본질론'을 깨부순 장본인임에도 변증법을 절대적 법칙으로 신봉하고 있다. 그는 지식인을 '피지배계급의 해방을 위한 혁명가' 로 묘사하고 있지만, 오히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이분법'을 적용해 버림으로써 보편의 수호자라는 지식인의 또 다른 정의와 모순을 만들어버렸다. 사견으로 지식인은 피지배계급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인'을 위한 보편자로써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며, 다른 관점에서 한 개인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성질을 동시에 지닐 수도 있는데,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은 이들을 모두 포괄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은 또 유효하다. 우리는 '상황 속에 놓인 존재'이며, 인류의 현재 상황은 그 어느때보다 불확실하다. 단적으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생각해 보자. 사실 지금 지구에 자원이 고갈된 것도 아니고 자연 재해가 닥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힘들어해야 하는가. 지금의 시장주의적인 경제 제도 때문은 아닐까? 인간이 편안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인간을 구속한다면 아이러니다. 게다가 잘 생각해 보면 자유무역이나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며 가진 자 또는 선진국을 위한 시스템이다. 현재의 상황 속에서 사르트르의 이분법은 분명히 유효하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그가 제시하는 투쟁의 방법은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다. 사르트르가 언제나 그래 왔듯이 그의 지식인론도 현재의 모순을 인식하고, 현재의 삶에 해결책을 내려 주는 현재의 철학인 것이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과연 지식인이란 무슨 존재인지를 설명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앞서 정의한 지식인이라는 존재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다른 지식인과 차별되는 '작가'라는 존재가 어떻게 지식인이 되며, 어떠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논설하고 있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도 느꼈지만, 박정태 강사님의 해박한 지식과 성실성, 좋은 문체 덕분에 이 분의 글은 참 읽기가 쉽고 재미있다. 남들 교수할때까지 남아 공부하신 내공의 힘인가.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철학 입문서가 나왔다.

우선,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은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정의하는 대자, 즉 기투하는 존재에서 생긴다. 인간은 '외부의 무엇인가를 향한' 반성하는 의식, 다시 말하면 끊임없이 자아를 정립시키려는 시간과 같은 존재이다. 인간의 내부는 항상 공허하므로 필연적으로 불안하다. 지식인은 이처럼 자기 내부의 모순을 체험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변증법적 존재인 것이다. 부르주아지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요구를 이해하고 정당화시켜주는 이데올로기를 창설하며, 이들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프티부르주아 계급을 교육시킨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생긴 사람들을 실천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라고 부른다. 이들은 위로부터 모집되어 일종의 운명과도 같이 부르주아의 권위를 위해 봉사한다. 하지만 그 중 누군가는 이것이 교활한 방식으로 특수주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즉, 지금까지 보편적이라고 배워왔던 것들이 사실은 지배계급만을 위한 편협한 이데올로기이며, 진정한 보편성은 피지배계급의 대변인으로써 행위할 때에만 획득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지식인은 자기 자신, 그리고 사회 속에서 (자기의 모든 규범까지 포함한) 실천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와 (자신의 전통적인 가치 체계까지 포함한)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을 깨닫고 피지배계급의 편에서 진정한 보편성을 세워야 함을 다짐한 자이다.

이처럼, 지식인은 허위 권위에 기대는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실존 속으로 기투된 존재이다. 그는 보편을 위해 싸우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이 그들 고유의 모습을 인식하고 노동 계급을 위해 일한다면, 그들은 노동 계급의 이론가일 뿐 지식인은 아니다. 따라서 지식인은 그 누구로부터도 위임장을 받을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 자기 자신과 사회 양쪽 모두에서 모순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식인은 외롭고 고독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비판과는 달리, 지식인 역시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 그의 사유는 필연적으로 특정 사회의 특이한 보편성에 의한 것이다. 이 특이한 보편성을 피지배계급을 위한 새로운 보편성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지식인의 몫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또 지식인을 필요로 한다. 지식인은 이처럼 하나의 특이한 보편이 특이한 보편들에 행하는 변증법적 작업을 현실화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자기 고유의 모순이 결국에는 객관적인 모순의 특이한 표현임을 깨닫게 된 지식인은 모순에 맞서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 또한 함께 해방되지 않으면 그 자신도 해방될 수가 없다. 지식인의 임무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지식인 자신의 모순 속에서 사는 일이며, 모든사람을 위하여 급진주의를 통해 지식인 자신의 모순을 넘어서는 일이다.

마지막 부분인 「작가는 지식인인가」 강연은 표현하는 자로써의 작가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가 어떻게 지식인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강연의 큰 줄기에는 해당하지 않는 부분이므로 굳이 요약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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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책에서 의미 있는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1. 실천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의 이데올로기적, 기술적 교육 또한 위로부터 구성된 체계(초등, 중등, 고등교육)에 의해서, 따라서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선별적일 수밖에 없는 체계에 의해서 정의됩니다. 즉 지배계급은 실천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제공해주는 방식을 통해서 교육을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a) 지배계급 자신이 적당하다고 판단한 이데올로기(이것은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에서 제공하는 것입니다)이며, b) 실천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로 하여금 그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줄 앎과 실천(이것은 고등교육에서 제공하는 것입니다)입니다.

2. 사이비 지식인들 또한 처음에는 지식인의 태도를 취하며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이의를 제기해봅니다. 하지만 제풀에 지쳐서 사그라져버리는 그들의 이런 행위는 결과적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그 어떤 이의 제기에도 끄떡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구성된 기만적 이의 제기에 불과합니다. 달리 말해 사이비지식인은 진정한 지식인처럼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니다, 하지만..." 또는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라고 즐겨 말합니다.

3. 개인이 무슨 말을 하자마자, 그는 자기가 의미하려는 이상의 것을, 그리고 그것과는 다른 것을 말하게 된다. 시대가 그에게서 그의 생각을 훔쳐가는 것이다. 그는 항용 이것저것 다른 표현을 써보지만, 마침내 표현된 생각은 심각한 빗나감뿐이다. 그는 말들의 기만에 말려들고 마는 것이다. -사르트르,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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